《미술관은 무엇을 수집하는가: 미술관 수집의 전략과 재매개: 다시 쓰는 미술-역사, 디지털 휴머니티, 작품의 운명》中 《헬로 월드, 소장 검토》전에 관하여 리뷰
*월간 『미술세계』 2019.1(vol.410)에 수록되었던 기사입니다.
발제: 스벤 벡슈테테(함부르거 반호프 현대미술관 큐레이터)
스벤 벡슈테테(Sven Beckstette)는 함부르거 반호프 현대미술관 큐레이터로서, 동 미술관에서 2018년 4월 28일부터 8월 26일까지 개최되었던 전시인 《헬로 월드, 소장 검토(Hello World, Revising a Collection)》(이하 《헬로 월드》)를 소개했다. 《헬로 월드》는 독일연방문화재단의 ‘글로벌 뮤지엄’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본 전시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자장 아래 미술관의 소장품 또한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소장품의 서구 중심적 관점을 인정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탐구하였다. 즉, 《헬로 월드》는 메타적으로 미술관 수집의 역사를 바라보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이번 심포지엄의 주제를 정면으로 관통하며, ‘미술관은 무엇을 수집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실천적인 답변이 되는 것이다.
《헬로 월드》는 서구중심주의가 어떤 방식으로 비서구권의 예술작품들을 포섭하는가에 주목했다. 기본적으로 국립미술관 다섯 곳으로부터 소장품을 대여하였고, 250명 이상의 작가들이 참여하였다. 이는 2년 여의 준비 기간 동안 큐레이터들의 지속적인 워크숍, 컨퍼런스로 사려 깊게 구체화된 결과물이었다. 벡슈테테 큐레이터에 따르면, 다양한 소재의 기관에서 협력한 만큼 각 기관 컬렉션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것이 《헬로 월드》전의 주된 목표였다고 한다.
이는 13개 면의 프리즘을 통해 펼쳐졌다. 그 출발점은 ‘아고라’이다. 무엇이든 유통되는 공론장의 비유에서 시작하는 13개의 전시 주제는 다음과 같은 키워드를 아우른다: 기원, 오리엔탈리즘, 아방가르드, 민속예술과 초현실주의, 감성적 건축, 북미 대륙의 회화적 실천, 인도의 모더니즘, 디아스포라, 지속가능성, 해프닝과 개념미술, 미디어아트, 사회주의, 식민성과 폭력, 생태주의 등. 이 키워드들조차 일부일지 모른다. 포괄적인 한편 매우 구체적이기도 한 개념어들은 전시의 기본 골조를 떠받치고 있다. 또한 13개의 챕터 외에도 인터루드(Interlude)라는 이름의 기획으로 주제전 사이사이를 채웠다.
주지할 부분은 각각의 주제들이 단순히 난립하는 게 아니라 관계성에 의해 연결되어있다는 점이다. 가령 요셉 보이스(Joseph Beuys)는 생태주의와 녹색당 활동으로 독일에서 잘 알려진 작가이고, 베를린국립미술관에도 작품이 소장되어 있는 작가지만, 그가 아르헨티나 작가 니콜라스 가르시아-우리부루(Nicolás García-Uriburu)와 교류하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가르시아-우리부루는 환경 문제를 일찍부터 다루어 왔고, 보이스와 그는 자연주의에 대한 견해를 같이하며 긴밀하게 교류하였지만 이는 충분히 기록되지 않았다.
한편 인도의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지성 라빈드라나드 타고르(Rabindranath Tagore)가 베를린국립미술관에 기증한 작업들은 나치에 의해 퇴폐미술로 분류되어 몰수된 바 있었다. 《헬로 월드》에서는 이 일화를 복기하여, 타고르가 1920~30년대 베를린 미술씬에 기여한 바를 보여주고자 했다. 《헬로 월드》는 또한 최근 자국의 작가들과 아프리카 작가들간의 연결고리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베를린국립미술관의 컬렉션에 현대 아프리카 지역 작가들의 작품이 거의 없다시피한 현실을 인식했다. 소장품전이니만큼 그러한 작품을 다른 곳에서 끌어오는 대신, 식민주의를 고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했다. 이를 통해 독일 사회에서 그동안 간과되었던 사실, 즉 독일을 포함한 유럽발 제국주의적 인식이 아직도 잔존하고 있음을 우회적으로 환기하고자 하였다.
벡슈테테 큐레이터는 베를린국립미술관이 민족주의와 결합하고, 이데올로기를 따라 흥망성쇠를 같이해온 자국 미술관의 역사를 성찰했다. 그는 신자유주의를 내세운 세계화 정세 하에서, 미술관이 스스로 각자의 사회적 역할을 인식하고 또 그것을 재설정해야 함을 역설했다. 결국 오늘날 초국적 세계화를 필두로 한 다원성이라는 가치는 정치적 관점에서 재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권의 기관들이 서로가 가진 물적·지적 자원을 공유하고 제휴해야 함을 제언하며 밀도 높은 발제가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이어진 토론에서 나왔던 질문 그대로, 모든 순서가 끝나고 나서도 여전히 물음표가 남았다. 제국주의적 패권을 구가했던 제1세계에서 이러한 주제를 다룬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혹은 동북아시아에서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유일한 분단국가이자 식민지로서의 역사를 품은 나라의 미술관에게는 또 어떤 책무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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