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미술세계』 2018.10(vol.407) 특집 「2018 비엔날레」에 수록된 글을 일부 수정한 글입니다.
전시명: 《2018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_숲 속의 은신처: 자연-사적 공간-셸터》
기간: 2018.8.28~11.30
장소: 연미산자연미술공원, 금강자연미술센터
총감독: 이스트반 에러스(Istvan Eros)
금강 줄기를 따라서 충청남도 내륙의 공주시에 오면 제비의 꼬리를 닮았다고 전해지는 연미산(燕尾山)에 다다르게 된다. 이곳에서 열리는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가 올해로 어느덧 8회를 맞았다. 비엔날레 전체 규모로는 22개국 81인(75팀), 연미산 자연미술공원에만 16개국 34인(25팀)의 작품이 금강 일대에 펼쳐진다.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는 ‘자연-사적공간-셸터’로 메인 전시는 연미산자연미술공원의 《숲 속의 은신처》전이다. 이외에도 특별기획전으로 영상전 《바람》, 부대 프로그램으로 금강자연미술센터의 자연미술 큐브전 《12×12×12+자연》, 《사이언스 월든-자본》 등을 선보인다.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의 역대 감독들을 열거해보았을 때 올해는 총감독이 외국인인 점이 눈길을 끈다. 이스트반 에러스(Istvan Eros) 감독은 2008년부터 지속적으로 비엔날레와 인연을 맺어 온 작가이자 교육자이다. 그는 본국인 헝가리에 돌아가서도 자연미술의 계보를 잇는 후학 양성에 힘쓰면서 이번 비엔날레를 다채롭게 만든 작가들을 유치한 주역이기도 하다. 감독 선정이 다소 늦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비엔날레 개최를 무사히 이끌어낸 데에는 ‘자연미술가협회 야투(YATOO, 이하 야투)’를 비롯한 조직위원회와 함께 총감독의 공이 혁혁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올여름 유난히도 가혹했던 폭염을 지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늦장마까지 버텨내야 했던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괜찮을까? 걱정과 기대를 반반씩 안고 연미산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주제전 《숲 속의 은신처: ‘자연-사적공간-셸터》는 비바람과 같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셸터(shelter)를 보여주고자 한다. 셸터라고 했을 때 보통 자연재해나 방사능처럼 거대한 위협으로부터 숨는, 좁은 의미의 ‘피난처’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번 주제 전의 셸터는 그보다는 넓은 의미이다. 기획 서문에서 숲 속의 셸터들이 ‘사적 공간으로서 방문자에게 안정감을 주고, 사색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고 밝힌 점에서 셸터의 의미를 재설정할 필요를 느끼게 한다. 어렸을 적에 숨바꼭질하던 기억 속 안방의 옷장이나, 책상 밑의 빈 공간이 주었던 묘한 편안함을 한 번쯤 떠올려보는 것도 좋겠다.
이를 뒷받침하듯 이번 비엔날레의 신작들 중에는 관람자가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작품이 많다.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은 프레드 마틴(Fred Martin)의 거대한 인간 두상 형태의 작품 〈나무 정령〉일 것이다. 관람객은 대나무로 된 거인 머리의 입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팀 노리스(Tim Norris)의 〈숲의 파도 셸터〉는 파도 모양의 차양 아래 의자를 대어 놨는데, 제법 아늑한 느낌을 준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이처럼 구조물 내부로 들어가서 앉아있거나 누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작가인 애니 시니만(Anni Snyman)과 PC 얀서 반 렌즈버그(PC Janse van Rensburg)는 〈잎 셸터〉를 협업하였는데, 이 작품은 두어 개의 나무 사이에, 그것도 공중에 끼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잎 모양의 구조물이다. 작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마치 평상과 같은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그 안에서 쉴 수 있는 한편 공중에 떠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불안정감 때문에 관람자는 작품이 기대고 있는 나무들에게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된다.
〈잎 셸터〉처럼 주변 풍광을 보는 시각을 재해석하고자 하는 작업들이 더러 있다. 물론 이 역시 작품 공간 내부로 들어가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그 가운데에는 루마니아 출신 작가인 팔 피터(Pal Peter)의 작업 〈또 다른 풍경을 위한 셸터〉가 돋보이는데, 그는 네모난 목조 구조물 안에 창을 내고 한 쪽에는 볼록렌즈를 통해 왜곡되고 뒤집어진 풍경을 볼 수 있게 했다. 그 반대편에는 같은 크기의 동그란 구멍과 함께 아래쪽에 45도 각도로 원형 거울을 설치하여 거울에 하늘의 상을 맺히게 했다. 이를 통해 그는 풍경을 보는 색다른 관점을 광학적으로 시각화하고자 한다. 한편 셸터는 위협의 구체적인 형태가 무엇이든 외부세계 즉 자연을 위험으로 간주하고, ‘대적한다’는 점을 근본으로 한다는 데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또한 이번 전시의 키워드인 ‘건축’은 자연에 인위적인 힘을 가해 무언가를 구축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작업들은 개념적으로 자연과 대결 구도에 놓일 수 밖에 없고, 미술과 건축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하게 된다. 그런데 이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자연미술의 정신과 모순되는 것 아닐까?
이는 자연미술이 비엔날레라는 전시 형식과 만나면서 마주칠 수밖에 없는 숙명이기도 하다. 셸터라는 주제 아래에서는 특히 이 딜레마를 잘 느낄 수 있었는데, 자연으로부터 수집한 친환경적인 재료를 동원한다는 사실만이 작가들이 조성한 셸터와 자연이 불화하지 않을 방법으로 고려된 것 같았다. 올해 제작된 셸터들을 비롯한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의 설치 작품들은 비엔날레가 끝난 뒤에도 철거되지 않고, 재료의 수명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라지게끔 기획되었다. 이 점은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가 다른 비엔날레와는 구별되는 특징이자 개성일 것이다. 그런데 그걸로 충분한 걸까? 자연미술의 변별점이란 자연환경이라는 장소특정성과 그로부터 나온 재료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번 주제전의 기획의도에서 이 모순, 특히 미술에서 더 나아간 건축이라는 키워드를 가져온 데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명하려는 시도는 발견하기 어려웠다.
분명 ‘자연’과 ‘미술’은 언뜻 서로 이질감을 일으키는 단어 조합처럼 보인다. ‘자연’은 위대한 생명력의 모태이자, 그 자체로 완결되어있는 세계인 반면 미술은 인간의 손을 거치는 창작물이다. 그리고 야투는 이 문제를 잘 알고 있었고, 또 한편 이용해왔던 것 같다. 비엔날레는 2004년에 출범했지만 주최측인 야투의 역사는 결코 짧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로 37년째를 맞는 야투는 1981년부터 자연미술이라는 미술 장르를 중심으로 꾸준히 활동해왔다. 야투의 자연미술 세계화의 교두보가 되었던 《금강국제자연미술전》은 1991년부터 시작되어 독일, 일본 등지에서의 교류전을 거쳐 현재 까지도 국제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연미술을 이론적으로 정립하는 작업은 야투의 내부모임인 ‘사계절 연구회’의 연구 활동을 주축으로 비엔날레의 심포지엄과 학술 세미나, 레지던스 프로그램 등을 거쳐 밀도 있게 구축되어 왔음을 아카이브된 도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야투는 자연 공간 속에 인간의 미술적 아이디어를 밀어 넣기보 다는 살아있는 자연과 인간의 예술의지가 균형을 이루는 지점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즉 자연의 자연성이 그대로 유지되는 가운 데 인간의 생각을 부족함 없이 받아내는 상호작용의 구조를 지닌 것이 야투 작업의 중요한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 전원길,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와 야투의 자연미술 운동」 (《2010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도록 수록 글) 中
“(...) 야투 개념은 ‘들’(野)=‘자연’에서 메시지를 ‘투’(投)=‘표현’한 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들이란 기존 미술 영역의 외부, 즉 미개척 의 광야를 의미하기도 하고 동시에 순수자연을 뜻하기도 한다. 그것은 야성(野性)으로서의 본성을 예술추구의 의지로 삼겠다는 것이다.”
- 김종길, 「‘야투’ 25년, 그 숭고의 몸짓」 (《2006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도록 수록 글) 中
위의 기술들을 참고했을 때, 기실 이번 비엔날레에서 야투의 자연미술의 정신과 보다 가까운 섹션은 영상전 《바람》에 있을 것이다. 영상전 《바람》에서는 각국의 작가들이 산, 들, 바다 등의 환경 에 온몸으로 부딪히는 퍼포먼스 작업들을 담았다. 헌데 영상전 《바람》은 연미산 공원 내에서는 개방된 공간에 텔레비전 단 네 대를 통해서 많은 작품이 연달아 상영되고 있었는데, 이처럼 몰입하기 힘든 환경에서는 관람객이 수십 여 개의 영상들을 모두 독파하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따른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 비엔날레 작품들과 함께 〈사이언스 월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조성된 생태 연못과 생태 화장실 연구 결과들을 감상할 수 있었지만, 메인이 되는 주제전에서 유예된 문제를 해소하기에는 (부대 프로그램이니만큼)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2008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의 도록 서문에 따르면 김미경 미술사가는 1980년대 한국미술 지형에서 소그룹 미술운동의 맥락으로 야투의 자연미술을 보고 있다. 1980년대는 정치·사회적으로 독재 정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어두운 시기였기에, 한국미술사 내에서는 그러한 현실에 참여하고 저항하는 민중미술이야말로 70년대 단색화를 잇는 80년대 미술의 대표주자로 역사화되었다. 그러나 김미경은 한국미술사 연구가 단색화와 민중미술이라는 두 거대한 흐름의 대결 구도에 치우치지는 않았는지 의구심을 표했다. 당시는 많은 작가들이 모더니즘에 저항하는 예술적 실험을 다양한 방식으로기도 했던 시기이기도 하며, 야투 역시 이 흐름에 몸 담고 있었다는 것이다.다만 야투를 비롯한 다른 소그룹들의 활동이 주류미술계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을 뿐이다.
야투가 표방하는 자연미술은 주체가 자연을 이용하고 소비하는 서구 중심적인 사고와는 거리를 두고, 자연에 순응하며 자아와 피아를 식별하지 않는 동양철학에 기반하고 있다. 이러한 정체성 덕분에 자연미술은 서양미술사적 관점 본위로 편성된 주류 현대미술에 속하기를 거부한다. 자연의 순리에 충실하고자 함이 제1의 목적인 한, 현대미술의 보증수표라 할 수 있는 새로움을 추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연미술의 ‘작은 몸짓’의 미학은 곧 국지적으로 꾸준히 활동을 이어나갈 힘이기도 하다. 야투의 일원이자 현 비엔날레의 조직위원장인 고승현 작가, 제3회 총감독을 역임하고 활발한 집필활동과 작업을 보여준 이응우 작가 등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가 해를 거듭하며 지속되고 있는 데는 이들의 열정이 있는 까닭이다.
창대하거나 화려하거나, 혁신적이지 않아도 된다. 자연미술은 스스로 아방가르드를 자처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미학적 자유로움을 가졌다. 그 대신 그때그때 어떤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지의 타협점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과제가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에 놓여 있다. 또한 동인(同人) 성격에서 출발한 미술 행사이기에 자연미술가협회 내부의 폐쇄성에 머물러선 안 된다는 외부의 시선 역시 고려해야 한다. 이에 대한 출구전략으로 외부 인사를 총감독으로 기용하고, 공주 시민들의 참여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자연미술 큐브전을 개최했다. 시민들의 참여 결과물이 비엔날레에 가감 없이 전시될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자 지역미술 거점으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울산과학기술연구소와의 협력 프로젝트인 《사이언스 월든-자본》의 참여 작가인 스테파노 데보티(Stefano Devoti)의 꿀벌에 관한 작업, 그리고 생태 화장실 실험의 성과도 기대할 만하다. 고승현 위원장은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의 안정적인 운영과 청년계층의 운영진 유입을 위해 ‘자연의 소리’ 협동조합을 결성해 앞날을 도모하고 있다.
물론 내실을 다지면서 외연을 확장하기란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비엔날레 조직위의 노력뿐만 아니라 외부의 관심과 지원이 중요한 열쇠이다. 우선은 지자체 차원, 충남도청 및 공주시의 재정적·물적 지원이 안정적으로 확보되어야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가 지역미술의 거점으로 원활하게 기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독자적인 미술 세계를 확립하고 활발한 국제교류로 영역을 넓히고 있는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가 지역을 넘어설 또다른 약진을 꿈꾸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전히 많은 것이 요구될지 모르지만, 너무 채근하지 않아도 좋다. 마르지 않는 금강의 생명력만큼이나 자연미술에는 잠재력이 늘 도사리고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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