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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이·쌓이고·녹아내리는-일상에 대한 낯선 번역》/ 후니다 킴 / 2018.6.8-8.11 / 페리지갤러리

misulsegye 2016~2019

by hanhs.past 2022. 3. 21.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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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미술세계』 2018년 9월호(vol.406)에 수록된 글입니다.

 

낯선 틈새공간

후니다 킴 /익숙함이·쌓이고·녹아내리는-일상에 대한 낯선 번역/ 2018.6.8-8.11 / 페리지갤러리

 

《익숙함이·쌓이고·녹아내리는-일상에 대한 낯선 번역》 전시 전경 ⓒ한혜수

 

 

따뜻한 노란색 방 안에 무드등들이 마치 반딧불이처럼 공간을 수놓고 있다비정형적으로 배치된 이 무드등들은 사실 빛을 내는 등이 아니라 미세한 전자 소리를 내는 소리 환경 장치’(이하 아파라투스’)들이다.1 이 아파라투스를 건드리거나그네를 밀 듯 조심스럽게 당겼다가 놓으면 그 움직임에 반응해서 소리가 증폭된다이 소리들은 관람자가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들린다따라서 아파라투스를 두세 개 움직이면 이러한 소리 경험은 다변화되고네 개다섯 개 이상을 건드리면 말 그대로 익명 다중의 소리 환경에 둘러싸인 기분을 맛보게 된다익명의 소리라 표현한 이유는 아파라투스가 내보내는 소리들이 주변음(ambient sound)으로서사이렌 소리말소리매미 소리물 흐르는 소리 등 원본을 추적할 수 있는 것들도 있지만 개중에는 전자 소음(noise)과 뒤섞여 식별할 수 없는 소리들도 많았기 때문이다이 전시는 시청각은 물론 공감각운동 감각 등을 다양하게 자극하기에 전시를 감상한다기보다는 일종의 체험을 한다는 데에 더 가깝다

 

아파라투스   ⓒ한혜수

 

 

 

물리적인 위상차에 따라 소리가 다르게 들린다는 점에서 최근 유투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ASMR 영상 컨텐츠를 떠올리기 쉬울지도 모른다.2 그러나 아파라투스는 기술적으로는 몰라도 그와 근본적으론 관련이 없다. ASMR 컨텐츠들은 선명도 높은 백색소음으로써 듣는 이의 촉각을 자극하고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반면 아파라투스는 백색소음과 불쾌한 잡음의 중간 어디쯤에 있는, ‘디지털 코드화되어 재구성된 소리들을 내보내기 때문에 관람자는 개별 소리들의 질감이 아닌다소 평평해진 기계음을 듣게 된다.

 

더 깊이 들어가보자실은 익숙함이·쌓이고·녹아내리는-일상에 대한 낯선 번역이라는 전시 제목은 후니다 킴의 작업이 이루어지는 방식의 삼단 원리를 내포하고 있다먼저 작가는 주변음을 채집하고(‘익숙함이’), 이 소리를 수()적 형식으로 변환즉 디지털 코드화하여 조합한 뒤 아파라투스로 하여금 내보내도록 장치를 설계하고 구축한다(‘쌓이고’). 그리고 아파라투스들은 전시장에 놓여 관람객과 공명한다(‘녹아내리는’?). ‘쌓이고’ ‘녹아내리는이란 표현의 근거는 작가가 소리를 마치 물성이 있는 점토처럼 여기기 때문이다그는 또한 이 장치들에 의해 소리뿐만 아니라 전시 공간 역시 소조한다고 말한다그런데 언뜻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이는 녹아내린다는 단어가 주는 해체적인 뉘앙스 때문일 것이다이 전시에서 작가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는 공간을 소조하는 데까지임에 동의할 수 있다면녹는 과정은 어디서 일어나는 것인가전시 서문은 새로운 감각적 토대를 만들려면 익숙한 것이 녹아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그렇다면 이 과정은 관람 주체의 내부에서 일어난다고 하면 충분한 설명이 되는 걸까?

 

  후니다 킴의 작업은 니콜라 부리요(Nicolas Bourriaud)의 관계미학의 렌즈로 바라볼 수 있으며이를 통해 보충 설명이 가능하다관계미학/관계예술은 서양미술사에서 1990년대 이후에 나타난 관객의 능동적인 참여를 전제하는 예술로이벤트성 전시에서 관객과 상호작용하며 한시적으로 형성되는 연대의 가능성을 내다본다관계적 예술은 또한 그것이 사회적 틈새의 공간으로써실행 가능한 유토피아를 제시한다는 정치성을 가지고 있었다후니다 킴의 작업 역시 이러한 관계미학의 조건에 해당하며사회의 어떤 틈새를 벌리는 데까지 성공했다다만 관계예술이 내포하고 있던 정치적 반역성보다는 그저 조금은 낯선 번역으로 충실한 공간을 만드는 작업이 그에게 더 중요했을 것이다개인의 감각체계를 재배열할 만한 환경을 만드는 일거기서 섣불리 유토피아의 정치성을 읽어내기는 현재로선 무리일 것이다그러나 판에 박힌 일상을 해체할 가능성을 제시하는 데에서 이 전시는 충분히 뛰어났고적어도 이 글을 쓰는 한 사람에게는 유효했다고 말하고 싶다

 

아파라투스 (부분) ⓒ한혜수

 

 

 

 

 

  1. 아파라투스(apparatus)는 디바이스(device)의 라틴어 어원으로 보통 기계, 장비, 신체적 감각기관 등으로 해석된다. 전시 공간에 놓여져 있는 아파라투스는 소리를 재현하기 위한 기술적 재생 도구가 아닌 환경적 소재이자 작가가 직접 제작한 메타미디어 장치이다. (...) 따라서 단순한 기계적 장치의 의미를 넘어 미디어(media)의 개념으로, 어떤 것과 또 다른 것을 연결하는 통로 또는 채널(channel)까지 의미를 확대할 수 있다. (본 전시 도록 참조) 
  2. ASMR는 자율 감각 쾌락 반응(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의 영문 줄임말로, 시각적, 청각적, 촉각적, 후각적, 혹은 인지적 자극에 반응하여 나타나는, 형언하기 어려운 심리적 안정감이나 쾌감 따위의 감각적 경험을 일컫는 말이지만, 본문에서는 특히 유투브 영상 제작자들이 이 용어를 내세우며 생산하는 다양한 목적의 제반 컨텐츠를 지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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