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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헤일: 제1회 드랙킹 콘테스트》 (2018.10.09, 명월관) 리뷰

misulsegye 2016~2019

by hanhs.past 2022. 3. 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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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미술세계 2018.11(vol.408)에 수록되었던 글입니다.

 

행사명: 올헤일: 제1회 드랙킹 콘테스트: ALL HAIL THE KING》일시: 2018.10.09장소: 명월관주최: 드랙킹콘테스트 

 

My King, Your Majesty

 

몇 년 전, 세계적인 팝스타 레이디 가가(Lady Gaga)는 신곡 ‘You and I’의 뮤직비디오를 공개하며 자기 자신의 또 다른 자아(alter ego), 조 칼데론(Jo Calderone)으로 활동한 바 있다. 그는 포마드 머리를 하곤 연신 줄담배를 피우며 고성을 내는 등 판에 박힌 마초성을 과시했다. 국내 연예 기사들은 ‘레이디 가가의 변신 이번엔 남장’, ‘정말 남자 같다’는 둥 떠들어댔지만, 어느 기사도 조 칼데론이 드랙킹(dragking) 자아임을 언급하진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는 드랙킹은 고사하고 드랙퀸 공연조차 복장도착 변태들의 난장으로 치부되기 일쑤이며, 킹/퀸을 혼동하는 경우도 심심찮으니 한국에서 드랙킹 씬이 당당히 자리 잡기란 요원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드랙퀸의 이미지는 뮤지컬 〈헤드윅〉이나 〈록키 호러 픽쳐 쇼〉의 인기로 대중적으로 알려진 바 있지만, 드랙킹은? 어딘가에 있을 법도 한데, 싶다가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올헤일: 제1회 드랙킹 콘테스트》(이하 《올헤일》)가 성공을 거둔 지금부터는 판도가 다를지도 모른다.

 

  《올헤일》은 국내 최초로 열린 드랙킹 콘테스트다. ‘콘테스트’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참가자들 간 경쟁 구도는 없었다. 《올헤일》을 통해 7팀(8명)의 새 킹들이 데뷔했고 총 11명이 퍼포머로 참여했는데, 주최측이자 이미 드랙킹으로 활동하는 아장맨(Azangman)은 물론 로미오(Romeo Sugar), 왕자, 범벅, 쟈키쟈키×비제비제, 로슈(Roche The Mad Scientist), 키스(Kiss), 존 존슨(John Johnson)이 그들이며 넬 폭스(Nell Fox)와 사파이어 레인(Sapphire Rain)이 게스트 퍼포머로 무대를 장식했다. 박수갈채와 환호성만큼이나 매 공연마다 팁들이 빗발쳤고 킹들은 예의 능란한 애드립으로 응답하곤 했다.

 

  눈치챘겠지만 드랙킹들은 본명이 아닌 드랙네임(drag name)을 걸고 킹잉(kinging)을 하는 동안만큼은 드랙킹 자아를 내세운다. 주디스 핼버스탬(Judith J. Halberstam)의 『여성의 남성성』에 따르면, 드랙킹은 “(보통) 분명한 남자 의상을 차려 입으며 이런 차림으로 연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여성”이다. 따라서 킹잉에는 남성성을 수행하고 이를 재현하는 문제가 따라오는데, 여기서 그 남성성이란 무엇인지를 질문할 수 있다. 수염 난 백인 남성, 호전적인 복서 등 《올헤일》에 참가한 각 드랙킹의 젠더 수행은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대답이다. 

 

  킹잉에서 여성의 남성성은 단순 모방이 아니라 패러디적으로 수행된다. 또한 그 과정에서 젠더가 굴절되는 효과(gender bending)가 발생하는 점이 주요한 특징이다. 가령 드랙킹 아장맨의 경우 미쳐버린 가톨릭 신부를 연기했는데, 색 대비를 강조해 기괴한 느낌을 주는 창백한 분장을 하고, 검정색 해골 지팡이를 부여잡거나 자신의 신체 일부를 거세게 잡아당기면서 불가해한 행위를 반복했다. 아장맨은 그동안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예술가적 광기를 재전유해왔다. 이번엔 여기에 더해 마치 악마에 씐 것 같은, 오컬트 코드를 차용해 가톨릭의 종교적 권위를 비튼 것이다. 이는 아장맨 본인의 작은 키, 마른 체형과 같은 신체와 착종되어 독특한 효과를 발생시키는데, 이처럼 드랙킹에 의해 체현된 남성성은 (원본으로 상정되는) 남성성과 동일시될 수 없다.

 

  한편 퍼포먼스의 노출 수위 문제는 중요한 화두이다. 드랙퀸과 달리 드랙킹 퍼포먼스의 경우 신체 노출을 제한하는 일이 왕왕 있다. 그런데 클럽 공연에서 흔한 스트립을 드랙킹이 수행할 때는 단순히 자극적인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남성과 달리 여성이 쉽사리 ‘웃통을 깔’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유두를 노출하는 퍼포먼스는 그 자체로 전복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불법 촬영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현 페미니즘 지형에서 이는 민감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올헤일》은 이 문제를 잘 알고 있었기에, 유사시에 철저한 피해자중심주의를 채택할 것을 주지했고 관객들도 오직 페미니스트만 참여할 수 있도록 조건 지어졌다. (하지만 페미니스트임을 굳이 증명하지는 않아도 되었다. 선언하는 그대의 양심에 달려있는 셈.)

 

  《올헤일》은 무엇보다 여성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자신을 당당히 드러내고 즐길 수 있는 장을 만들고자 했고, 그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이는 관람 타겟을 페미니스트에 한하는 전략과 함께 당신이 어떤 페미니스트이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겠다는 관대함 또한 깔려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고 생각된다. 느슨한 유대감과 안전감을 드랙킹 퍼포머와 관객들이 동시에 공유하고 있다는 감각. 드랙 실천을 통해 젠더 규범을 흩뜨리고 해체한다는 버틀러 식 거창한 설명도 맞겠지만, 참여자들 사이에 흐르는 이상한 내적 친밀감과 유쾌함 덕분에 드랙킹 콘테스트는 해방적인 느낌마저 품고 있었다. 제2회 드랙킹 콘테스트가 열리기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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