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미술세계』 2017년 11월호(vol.396)에 수록된 글입니다.
공동체, 1+1 이상의 무언가에 관한 상상
《공동의 리듬, 공동의 몸》/ 강현선 외 35인·팀 / 2017.9.15~12.3 / 일민미술관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라는 명제는 틀렸다. 인간은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끊임없이 갈구하기에 사회를, 공동체를 이루고 산다. 물론 전통적인 의미에서 결속력 있는 공동체의 모양은 오늘날 기대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가장 작은 단위의 친밀한 공동체로서 가족은 더 이상 중산층 핵가족 형태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국가공동체의 이상은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계획공동체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는 1960년대 히피공동체의 지저분함과 방종함으로 (아직도) 점철되어 있다. 그렇다면 공동체는 실패했는가? 아니, 과연 처음부터 공동체의 실체를 언명할 수나 있었을까? 이러저러한 난제들을 딛고서 《공동의 리듬, 공동의 몸》은 과감히 공동체를 다룬다.
전시는 아카이브 전시 형식을 취한다. 아카이브가 정보를 단순히 집적하는 수준이 아니라 보기 좋은 모양으로 짜임새 있게 기록물을 구성한다는 의미라고 했을 때, 어떻게 전시가 짜여있는지를 먼저 살펴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전시는 세 덩어리로 나뉘어져 있다. ‘민중의 리토르넬로’, ‘시민, 난민, 유민: 조화와 반목의 시나리오’, ‘타임라인 위에 모인 마을, 공동체, 사람들’이 그것이다.
첫 번째 섹션인 ‘민중의 리토르넬로’는 민중이라는 주제를 다루되, 펠릭스 가타리(F. Guattari)의 ‘리토르넬로(ritornello)’ 개념을 가져와 구체성을 기하고자 한다. 리토르넬로란 삶의 실존적 영토에 존재하는 반복구로서의 화음을 의미한다. 이는 모든 개개인들이 일종의 고유한 박자를 가짐으로써 공동체적 화음을 만들어내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개념이다. 이에 수묵으로 리듬감 있는 화면을 보여주는 이응노의 〈No.64〉와 민중미술의 대부인 오윤의 목판화가 출발선을 긋는다. 그리고 두레에 관한 아카이브와 노동요(민요 연구자 이소라의 아카이브), 디아스포라 문제(김소영의 아카이브) 등을 경유해 현대의 평면작품(이우성, 이미연)에 이른다. 또한 현대의 ‘민중 엔터테이너’를 자처하는 한받의 〈구루부 구루마〉와 같은 오브제 설치가 눈에 띈다. 한받은 야마가타 트윅스터라는 활동명으로 〈일민불만합창단〉이라는 전시의 부대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기도 하다.
두 번째로 ‘시민, 난민, 유민: 조화와 반목의 시나리오’는 연구자 아카이브 중심의 섹션으로, 여기서는 근대화, 산업자본주의와의 연관성 하에 섹션1의 전통적 주제와는 대비되는 정치적 공동체와 사회적 공동체를 시각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조은은 사당동 재개발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 궤적을 보여주는데, 정량적인 방법론에서 시작한 그는 종래에는 한 할머니의 가정을 집중적으로 도큐멘트하게 된다. 서동진은 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 서울지부를 구축했다. 이외에도 문화운동과 소수자, 하위문화 연구자로서 양효실, 한국 광장문화에 대한 연구 아카이브를 구축한 김백영, 일본의 적산가옥에서 시작해 제국주의 문제에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유스케 카마타 등 비교적 방대한 주제들을 포괄하고 있다. 섹션1과 섹션2에 걸쳐 공통적으로 작은 것, 사회적으로 탈락된 주변적인 존재, 소수자에서 출발하는 시선을 감지할 수 있는데 이는 미셸 푸코(M. Foucault)의 계보학적 방법론을 떠올리게 한다.
한편 세 번째 섹션, ‘타임라인 위에 모인 마을, 공동체, 사람들’은 SNS 용어인 타임라인을 빌려온 데서 짐작되듯 미디어를 활용한 동시대의 미적 실천들을 선보인다. 옥인 콜렉티브와 미디액트의 팟캐스트 라디오 프로젝트, 크리스토퍼 쿨렌드란 토마스의 〈뉴 일람〉등 온·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이뤄지는 확장된 장에서의 공동체적 실천들이다. 여기에 물리적인 전시공간뿐만 아니라 매주 진행되는 공연, 강연, 워크샵 등의 부대 프로그램들이 더해져 전시를 더욱 풍부하게 한다.
미처 다 언급하지 못한 작품들을 포함해 《공동의 리듬, 공동의 몸》은 민중, 민족, 여성, 노동, 재개발, 근대화, 제국주의, 도시화, 자본주의 등 다양한 결을 조금씩 건드린다. 각각의 유닛들은 자기 자리에서 자기의 목소리를 내고, 그 목소리들을 종합하는 일은 오롯이 수용자의 몫이다. 관람객들로 하여금 주어진 시각정보들 중 어떤 것은 취하고 어떤 것은 유보시키면서 이들이 한데 어우러진 화음, 자기만의 리듬으로서 리토르넬로로 기능하기를 기대하는 듯하다.
그런데 사실 이는 공동체를 대함에 있어 어떤 종류의 안정적 통일체나 통합의 이상은 포기함을 전제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아카이브 전시가 갖는 태생적 한계이기도 하고, 담론의 장에서 이미 논해진 바이기도 하다. 일민미술관 1층 기둥서점에서는 전시를 더욱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책으로 장 뤽 낭시(Jean-Luc Nancy)의 『무위의 공동체』를 추천하고 있는데, 낭시는 이 저작에서 공동체의 (역사적) 실패 이후 어떻게 우리가 공동체에 대해 사유할 것인가를 질문한다. 그의 이론적 과업은 나치즘과 같은 전체주의에 의해 오염된 공동체(communauté) 개념으로부터 개별자의 실존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공동체의 의미를 추출해내는 것이었으며, 동시에 개인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것을 골자로 한다. 어쩌면 무위의 공동체라는 테제가 이 전시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지 모른다.
낭시는 개인 즉 원자들만으로는 공동체를 이루기 불충분하다고 강조한다. 개별적인 것들의 기록과 집합 이상의 무언가, 1+1=2 이상의 무언가를 꿈꾸는 일은 정말로 공상일 뿐인 걸까? 다행히 허황된 얘기만은 아니다. 복잡한 이론이 아닌 삶의 영역에서 공동체적 실험들은 지금도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 조한혜정 교수의 아카이브에서 그 단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인간을 거의 ‘좀비’로 만드는 루틴에서 벗어나, 노동과 삶이 유리되지 않는 마을활동에 가담하는 청년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내용이다. 어디선가 미결되었을지 모르나 나름의 박자를 가진 소리들이 들려오는 것 같다. 그것들은 곧 선율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고, 우리에게는 완수해야할 과제로서 주어져 있다.
▲ 한받, 무전음악합창행진 퍼포먼스 (사진제공: 일민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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