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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rus Limetta》 / 강민지 / 9.16-10.8 / 갤러리 스튜디오 148

misulsegye 2016~2019

by hanhs.past 2022. 3. 21.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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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미술세계』 2017년 10월호(vol.395)에 수록된 글입니다. 

 

불가능성을 붙잡아두기

Citrus Limetta》 강민지 / 2017.9.16-10.8 / 갤러리 스튜디오 148 

 

 

요즘 향수나 화장품 이름들에서 심심찮게 접할 수 있는 시트러스는 감귤류의 과일을 통칭하는 말이다어쩐지 귤이나 오렌지라고 특정하기에는 조금 빈해 보일 때 쓰는 표현인 것도 같다. ‘citrus limetta’라고 했을 때는 라임나무의 학명(學名)이다강민지 작가는 어렸을 적부터 식물 키우기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2013년에는 라임나무를 인터넷으로 배송 받았다문제는 생물이라면 반드시 시작과 끝을 담보한다는 점이다. 3년여의 시간 동안 그가 애정을 주었던 라임나무도 예외는 아니어서나무는 작년 정초에 유명을 달리했다이 전시는 강민지가 죽인 바로 그 식물에 관한 이야기이다.

 

 

Growing point〉 1~3, 석고유리 섬유, 225x30x30cm, 2017. ⓒ한혜수 

 

작가는 본 전시에 앞서 올해 여름 공에도사가있다’(서울 영등포구 소재 인디아트홀 공’ 별관)에서 내 식물은 내가 없는 동안 이야기를 할 것이다〉 퍼포먼스로 같은 소재를 다룬 바 있다그 퍼포먼스가 죽은 식물을 애도하는 행위에 집중했다면 이번 전시는 그 애도를 어떻게 조각적으로 구현할 것인가를 고민한 결과다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Growing Point가 시선을 끈다일견 그리스 신전을 떠올리게 하는 흰 기둥들은 흰 벽과 조화를 이루는데어딘지 가짜 같은연출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이는 작가가 의도한 바이다그는 전시 공간 전체를 라임나무를 애도하는 신전처럼 꾸미고자 했다보통 신전이라고 하면 대리석을 떠올리지만 화이트큐브라는 조건을 거스르지 않는 석고 기둥은 이물감 없이 주변과 섞여들어 간다

 

 

〈Tap Root〉, 석고, 유리 섬유, 25x30x30cm(7ea), 2017. ⓒ한혜수 

 

작품명 Growing Point는 생장점을 의미하는데이 생장점들 옆의 Tap Root를 보면 기둥을 구성하는 조형의 단위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Tap Root의 덩어리들은 마치 속이 꽉 채워진 커다란 항아리처럼 생겼는데이 유닛(unit)은 라임나무가 터 잡고 있던 화분의 안쪽을 캐스팅한 것이다작가는 화분의 빈 공간을 채우고 또 비우는 작업을 반복해서 수행했다그 뒤쪽 벽면에 있는 작품은 37 Irregular죽은 나무줄기의 지름을 측정한 값이 원통형 석고들이 됐다그런가 하면 Spreading Form에서는 나무의 전체 형태의 끝점들을 연결해 나무가 차지했던 공간을 시각화했고Kitron은 라임이 택배상자에 배달되어 왔을 당시의 공간점유율을 표현했다

 

텍스트 작업 하나(Untitled)를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부재하는 대상이 점유할 수 있는 공간부피에 대한 고민을 풀어내는 데에 수학적인 계산법을 동원하였다동일한 유닛을 더하고 빼거나지름을 재거나비율을 따져보는 등무엇보다 일관성 있게 석고를 재료로 채택했음을 알 수 있다여전히재료가 이 전시 주제와 갖는 필연성은 의문으로 남는다재료가 풍기는 고전적인 분위기로 인해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는 아카데믹한 미술의 논리를 따라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반대로 그 고전적인 느낌을 사소한 차원으로 가져와서 유희하는 듯도 하다

 

▲ 〈37 Irregular〉, 석고, 가변설치, 2017. ⓒ한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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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ading Form〉, 석고, 유리 섬유, 스테인리스 스틸, 31x41x22cm, 2017. ⓒ한혜수 

 

 

한편 그의 작업이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한다는 점특히 죽은 식물을 기리기 위한 신전이라는 콘셉트는 다소 감상적인 느낌을 준다우리는 모두 어딘가에서 무언가의 상실을 경험했지 않은가좋아하던 대상을 잃어버렸다는 느낌은 보편적인 만큼 익숙한 주제이다하지만 이 전시가 단순히 애상적인 정서에만 그치지 않는 이유는이 작업들이 상실한 대상을 온전하게 기억하는 일의 근본적인 불가능성즉 실패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 있다붙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실체는 미끄러지지만강민지는 그 불가능성을 극단까지 끌고 왔다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보통 잃어버린 무언가를 인간이 정확하게 기억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동시에 그 기억이 어떠하다라고 확증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은연중에 알고 있다불가능한 것실패한 것놓칠 수밖에 없는 것들을 사랑하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어쩌면 이런 행위가 우리 삶을 견인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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