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2016 타이틀매치: 주재환 vs. 김동규 (빛나는 폭력, 눈 감는 별빛)》2016.7.26~10.16 /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misulsegye 2016~2019

by hanhs.past 2022. 3. 21. 23:29

본문

*월간 『미술세계』 2016.9월호(vol.382)에 수록된 글입니다.

 

시간차를 통과하며 보이는 것들

2016 타이틀매치: 주재환 vs. 김동규 (빛나는 폭력, 눈 감는 별빛)》 / 2016.7.26~10.16 /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주재환〈크기의 비교 B-52 vs. 빈 라덴 1/10 스케일〉〈부처예수가 보시기에 좋았더라?〈폭력〉 설치 전경 ⓒ한혜수

 

2016 타이틀매치》전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원로, 청년작가를 매칭하여 세대 간의 상생적 소통과 화합을 도모하는 기획전시다. 올해 3년째를 맞는 이번 전시의 주인공은 주재환(1941~), 김동규(1978~) 작가로 신작 위주의 전시여서 더욱 의미 있다. 김동규 작가는 2011년 아트스페이스 풀에서 첫 개인전 《2011 풀 프로덕션: 인양》을 시작으로, 근래에는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에서의 개인전, 세종문화회관 《굿- 2015》에도 퍼포먼스로 참여하였으며 올해는 두산갤러리 뉴욕에서 3인전을 거쳤다. 한편 최근 학고재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진 바 있는 주재환 작가는 현실과발언 동인의 멤버로서 1980년대 한국 민중미술의 산 증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그의 작품세계를 언제까지나 민중미술의 연장선에만 놓고 보려 한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놓치는 게 더 많을 것 같다. 

 

이는 폭력이라는 키워드로 연결되어 주재환과 김동규의 작품이 섞여 들어가는 지점들 때문이다. 우선 미술관 측 설명에 따르면 둘을 ‘vs.’로 갈라놓는 요소는 세대, 그리고 폭력에 대한 상이한 초점이다. 주재환은 전쟁과 테러, 군비 경쟁과 같은 거시적인 폭력을 다룬다면 김동규는 미시적인 일상의 폭력들을 표현한다. 그런데 기획의 의도를 모르고 전시를 찾는 보통 관람객이라면 그 대립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어찌 보면 세대 간의 화합이라는 전시의 일차적인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세대론으로 대립시키기에 주재환의 감각과 관심사는 현대적이고, 청년작가의 위상으로 소환된 김동규는 단순히 청년이라고 호명하기에는 어딘지 석연치 않다. 사실 전시 서문이나 리플릿을 봐도 특별히 청년작가로서 그의 특수함은 부각되지 않는다. 세대론은 이 경합에서 다만 하나의 출발점일 뿐인 것이다. 

 

김동규〈각개전투〉혼합재료, 10분에 한 번 30초씩 기립, 2016 ⓒ한혜수

 

출발선을 떠난 두 사람의 작품들은 무엇보다 방법적인 면에서 서로 공명하고 있다. 그 첫 번째 요인은 직접적인 시각적 상징물로 주제를 매개하고 있다는 점이고, 나머지 요인은 위트와 유머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시선을 빼앗는 작품은 주재환의 〈크기의 비교 B-52 vs. 빈 라덴 1/10 스케일〉이다. 한쪽 벽 중앙에 거대하게 인쇄된 전투기 B-52 9·11 테러 후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보복 전쟁에 쓰인 융단폭격기로, 실물의 1/10 비율로 축소됐다. 그 가운데 빈 라덴의 피규어가 바닥에 놓여 있어 물리적인 크기 차이가 한 눈에 보인다. 주변에는 황금색 상자들이 쌓여 있다. 〈부처, 예수가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작품명의 황금상자 84개는 한 개당 200억 달러의 지폐를 담을 수 있는 용량으로 세계 군사비 지출 총액인 1 6,800억 달러를 상징한다. 상자에 인쇄된 텍스트들과 조그마한 피규어를 고개 숙여 살피면서 국제정세와 힘의 논리에 대해 숙고하려던 찰나, 돌연 요란한 굉음이 온 전시장을 휩싼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뒤돌아보니 시커먼 미사일 모양의 바람인형들이 웃는 낯으로 춤을 추고 있다. 김동규의 〈각개전투〉다. 6개의 바람인형들에는 사랑편의점’, ‘기쁨노래방 등의 문구가 적혀 있는데 아름다운 가치들을 담은 단어들이 애당초 가게의 안녕을 기원하는 바람인형의 본래적인 홍보성, 상업성과 부딪히며 아이러니를 만든다. 그럼 바람인형 미사일들이 가리키는 곳은? 천장에 영사되고 있는 주재환의 〈타겟 쇼〉다. 그리고 이 구역을 둘러싸고 있는 작품은 다시 김동규의 〈시대정신〉이고, 그 뒤에는 주재환의 파운드 오브제 콜라주 연작들이 벽면에 늘어서 있다. 이처럼 작품들이 핑퐁하듯 서로를 가리키면서 교직되어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구체적인 형상을 갖고 있거나(미사일, 전투기) 발견된 일상의 오브제를 조합한 결과물이다(달력, 피규어, 군장 등).

 

김동규〈시대정신〉한지에 먹, C-print, 52.5x103cm 12, 2016 ⓒ한혜수

 

주재환〈야전병원〉들것 위에 종이 및 오브제가변크기, 2016 ⓒ서울시립미술관

 

작품에 공통되게 흐르는 유머와 위트는 폭력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지탱하는 힘이다. 김동규의 〈시대정신〉 전면에는 인터넷 뉴스와 광고들에서 추출한 조각난 말들이 동양풍 병풍처럼 꾸며져 액자 처리되어 있다. ‘서울대생이 개발한 청년실업 팬티를 구매할 차례와 같이, 짐짓 진지해보이려는 외관에 비해 어처구니없는 단어 조합에 관람객은 실소하면서 궁금증을 품게 된다. 또한 주재환의 〈벙어리장갑 끼고 방아쇠 당겨요〉는 AK-47, K-2 소총에 초콜릿 탄환을 장전하고, 벙어리장갑을 함께 비치해 폭신폭신한 벙어리장갑을 낀 채 방아쇠를 당기는 상상을 해 본다며 폭력의 상징물을 해학으로 역전시켰다.

 

주재환〈벙어리장갑 끼고 방아쇠 당겨요〉혼합매체가변크기, 2016 ⓒ한혜수

 

 

결론적으로 세대를 뛰어넘어 우리가 쉽게 인식하지 못했던 사회의 만연한 폭력을 형상화하고 생각해볼 기회를 던져준다는 전시의 나머지 의도 역시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주재환 작가와 이물감 없이 경합을 벌이는 김동규라는 작가가 공립미술관 전시를 통해 가시화된 효과도 간과할 수 없다. 그런데 전시장을 나오면서 보니 부제 빛나는 폭력, 눈감는 별빛에서 잔여처럼 취급되었던 부분, ‘눈감는 별빛이 이제야 신경이 쓰인다. 그저 공기와 같은 폭력이 있다는 사실 확인만으로는 회의감만 증폭될 뿐이다. 어쩌면 폭력의 사슬에 균열을 낼 실마리는 이 별빛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폭력 앞에서 눈 감는 자 누구인가? 아니, 누구든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