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미술세계』 2016.5월호(vol.378)에 수록된 글입니다.
귄터 그라스 특별전 / 4.8~5.8 / 단원미술관
귄터 그라스(Günter Grass, 1927-2015), 노벨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소설 『양철북(Die Blechtrommel)』의 그 저자를 안다고 하기 차마 민망한 수준일 때 안산문화재단(이사장 제종길) 단원미술관에서 열리는 귄터 그라스 특별전을 찾았다. 이번 전시는 귄터 그라스의 판화 작품 80여 점과 조각 작품 10여 점 외에도 자필 시 원고와 영화 〈양철북〉(1979) 포스터, 다큐멘터리 등 문학과 미술이 접목된 다양한 아카이브 자료가 전시되어 있어 귄터 그라스의 생애와 작품을 종합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기회였다.
『양철북(Die Blechtrommel)』 원화 드로잉 ⓒ한혜수
귄터 그라스는 독일을 대표하는 대문호이자 위대한 시민이었으며 미술가였다. 『양철북』(1959), 『넙치(Der Butt)』(1977), 『텔크테에서의 만남(Das Treffen in Telgate)』(1979) 『양파 껍질을 벗기며(Beim Hauten der Zwiebel)』(2006) 등의 대표작으로 유명하지만 그가 미술을 전공했던 화가 겸 조각가로 스스로를 호명했다는 사실, 탱고와 재즈에 능했으며 트럼펫을 즐겨 연주하고 요리와 사진까지 좋아한 르네상스형 종합예술인이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1949년 22세부터 뒤셀도르프국립미술대학에 진학해 예술을 접했고 1952년부터는 베를린국립예술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했다. 귄터 그라스는 또한 청소년기에 독일 나치의 무장친위대로 참전한 이력이 있음을 2006년 공개해 논란이 된 바 있으며, 종전 후 미군의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다 풀려난 후 광산 노동자로 일하는 등 폭풍 같은 시대를 온몸으로 겪어낸 인물이었다. 이러한 그의 경험은 ‘참여문학’으로 불리는 그의 문학활동의 인식적 배경을 짐작케 한다.
따라서 귄터 그라스를 다루면서 예술과 정치에 관한 담론을 피해가기는 어렵다. 문학을 ‘통해서’ 현실에 개입하기 이전에 그라스는 현실을 한계 짓는 억압에 대해 발언하고 저항하는 시민이자 활동가였기 때문이다. 그는 사민당 당원으로서 몇 백 번에 이르는 선거유세에 직접 연사로 나섰고, 공개서한, 텔레비전 토론, 강연, 집회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또한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지지하고 관철시켰으며 반핵·평화운동, 환경운동, 제3세계운동의 선두에서 싸웠다. 정치적 외압을 받는 세계의 작가들과 연대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독일 사회의 정치적 쟁점이 있는 곳에는 늘 그가 있었다.
귄터 그라스, 〈손 안의 넙치Ⅱ(Butt im GriffⅡ)〉, 높이 39cm, 브론즈.
이미지 제공: 단원미술관
활발한 정치참여는 그의 문학과 정치적 실천 간의 비교를 낳았고 그 차이를 의문시하는 공격으로 이어졌다. 그라스는 이에 대해 “저는 두 가지 역할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술가로서의 역할과 시민으로서의 역할이 그것입니다. 여기엔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연설문을 쓰고, 또한 소설도 씁니다. 이들은 각각 고유의 서술법칙을 가지고 있습니다.”라는 언술로 문학활동과 정치활동이 서로 상이한 표현형식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한편 그는 “저의 이중활동에 대한 모든 비난들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답하렵니다. ‘작가는 현실을 통해서, 또한 당연히 정치적 현실을 통해서 스스로를 의문시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것은 현실과의 거리를 포기해야만 가능합니다.”라며 결국 작가적 주제의식이 사회와 직결됨을 말하고 있다. 즉 귄터 그라스의 예술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사회적일지언정 그 표현 형식이 맥락과 정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귄터 그라스 특별전》 전시 전경 ⓒ한혜수
전시는 비치된 그라스의 책과 함께 관련 드로잉과 판화를 순차적으로 볼 수 있는 구조였다. 일정 구간마다 설치된 분홍색 현수막에는 “예술은 타협이 불가능하고 인생은 타협의 연속이다”, “아름다운 건 모두 삐딱하다” 등 잠언 같은 글귀와 소설 발췌문들이 섞여 있었다. 전시장의 끝엔 그라스의 책을 모아둔 아카이브와 영화 상영실이 있다. 이 영화 상영실이 특별한 이유는 토요일마다 영화 〈양철북〉을 비롯, 주한독일문화원에서 추천한 고전 영화들을 전시 입장료만 내면 무료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친절한 기획과 홍보 덕분일까, 전시실 내부는 아이들부터 젊은 연인들,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관람객들로 붐볐다. 단원미술관은 명실공히 시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하는 안산시내의 지역미술관으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전시를 통해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사회와 자신을 뒤섞는 왕복운동, 그 삶 자체가 예술이었던 귄터 그라스의 실천들을 장르화하는 노력이 끝내 무용한 것임을, 그리고 그의 정신이 멀리 있지 않으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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