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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호,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동양북스, 2016.8) 리뷰

book review

by hanhs.past 2022. 3. 21.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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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9.30에 페미니즘 스터디 모임을 위해 쓴 글입니다.

 

그 남자는 페미니즘을 하면 된다

-오찬호,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동양북스, 2016.8) 리뷰

 

 

 

페미니즘의 물이 끓고 있다. 물 속에서는 메갈이라는 뜨거운 감자가, 오래 삶아지다 못해 짓물러지고 있다. 메갈리아를 지지한다는 혐의로 한 성우는 일자리를 잃었고, 이를 비호한(지금은 이 입장을 철회한) 정의당은 메갈당으로 몰려 당원 500여 명이 탈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편 그 성우를 옹호하고 지지한 웹툰 작가들을 보이콧하자며 사실상 검열을 정당화하는 예스컷(Yes Cut)’ 운동도 나타났다. 이 모든 사태들이 일어난 데는 약 일주일이면 충분했다. 이제, 온라인 커뮤니티인 메갈리아와 워마드에 대한 논쟁이 온라인에서만 이뤄진다고 해서 그것이 찻잔 속 태풍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게 됐다. 그러기엔 실생활에서 많은 부분들이 변화를 맞고 있다. 혹시 아직도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는 이 변화를 과소화해야만 하는 어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지극히 개인적이든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든, 아니 어쩌면 스스로 인식할 수조차 없는 것일지라도,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는 이를 해명하고자 한다. 

 

 이 책은 저자 오찬호가 6년 전 자신의 블로그에 연재하던 칼럼들과 웹진 기고를 편집한 글모음이다. 글들은 머리, 가슴, 어깨, 등이라는 네 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인간의 신체 분류를 꼭 따를 만한 이유가 있었을까 싶지만 덕분에 (혹자는 유치한 구분이라 손가락질할지라도) 누구나 손 뻗어 읽어보기 좋은 대중서가 되었다. 각각의 글들은 저자의 자기고백이기도 하지만 한국인이라면 일반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익숙한 현상들을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다룬다. 그래서 사실 이 책은 앞에서 뒤로, 순차적으로 읽지 않아도 별 상관이 없다. 

 

 그래도 1장인 내가 배워야 할 건 군대에서 다 배웠다”[머리]에서는 차근차근, ‘착하고 말 잘듣는 여자가 이상형이라고 할 정도로 보수적이었던 저자가 어쩌다가 페미니스트로 전향하게 되었는지 그 전말을 고백한다. 거기에는 임신과 출산, 그리고 군대라는 키워드가 관통한다. 저자는 아내의 출산 과정을 지켜본 소회를 매체에 기고하며, 글 말미에 자신의 군 생활은 분만실 40시간에 비하면 장난이었다는 단 하나의 언급 때문에 욕설이 난무하는 댓글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일약 페미니스트라는 낙인(승인?)을 얻게 된 건 거의 동시였다.  군대는 금기어가 되었나? 라는 질문으로 이 장은 악플과 함께 시작해 한국 남자들의 공통된 집단경험인 군대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군대 다녀오길 정말 잘했구나, 이는 젊을 때 눈 딱 감고 2년만 참으면 평생을 대한민국 남자로서 프리미엄을 누리게 된다는 말이다‘. 군대부터 다녀왔는지 묻는 교수님, 선배, 장인어른과의 대화에서 중부 전선에서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습니다라는 대답, 이후 물 흐르듯 이어지는 화기애애한 대화는 한국사회의 곳곳이 군대로 점철되어 있음을 방증한다. 군대에서 배운 대로만 하면 복종을 유도하는 한국사회에 무리 없이 적응할 수 있다. 이는 한국사회가 곧 군대나 다름없는 말이다. 그렇게 군대 다녀와서 사람 됐다’, ‘내가 배워야 할 건 군대에서 다 배웠다는 레토릭이 허용되며 남자들은 괴물이 되어 간다. 저자는 군대의 경험이 얼마나 좆 같은지를 토로하며 한국 남성의 고충을 어루만지면서도 아슬아슬하고 날카롭게 한국 남자로 누리는 특권들이 정당화되는 게 아님을 꼬집는다. 

 

 2장인 나처럼 좋은 남자도 없어” [가슴]는 책에서 비교적 많은 분량이 투여된 장이다. 그만큼 뚜렷한 일관성 없이 다양한 논점을 가로지르고 있는데 이는 한국군의 베트남전 파병 중의 전쟁범죄와 라이따이한 같은 묵직한 논점들부터 시작해서 개저씨라는 단어의 함의, ‘김여사라며 여성 운전자를 비하하는 이들은 모두 남성이라는 사실과 예쁜 수강생 앞에서 초능력자가 되었던 자신의 유쾌한 성찰까지 이른다. ‘늑대 강사라는 낙인이 두려웠던 저자는 미스코리아 출신 수강생에게 더욱 모질게 굴거나 질문을 무시했던 반면 다른 여학생에게는 편하게 소주 한잔 권하는데 거리낌 없었던, 자신 또한 한국남성이었음을 고백한다. 그런가 하면 베트남 참전 당시 자행되었던 한국 군인들의 전쟁범죄에 대한 라이따이한들과 피해 여성들의 진술은 새삼스런 충격을 안겨준다. 이들은 베트남에서 강간범죄를 저지르고 무책임하게 떠난 후 고국에서 안온한 가정을 꾸린다. 그래서 아버지를 찾아 한국으로 온 라이따이한들을 본 그들은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만나주지 않거나, 그나마 생활비에 보태라고 돈봉투나 쥐어 주면 다행인 정도다. 저자는 한국 남자들에게는 배신의 DNA라도 있는 것인가 라며 이를 비꼰다. 현재도 이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3 남자로 살기 너무 힘들어”[어깨]에서도 비슷한데 이 장에서는 차별을 합리화하는 기제들이 어떻게 사회 도처에서 작동하는가에 더 집중한다. 종교도 예외일 수 없다. 성당에서 주교님의 행차에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응대하는 과정, 우국충절을 위해 몸 바친 과부 논개(그녀의 본명은 주논개이다)가 기생으로 기록된 사연을 파헤쳐보면 남성 중심 논리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젠틸레스키 대() 카라바조 등 다른 남성 화가들의 작품을 비교하면서 남성 화가들의 시선이 얼마나 습관적으로 여성을 대상화하고 있었는지를 폭로하는 대목은 도판과 함께 한 눈에 차별적 인식을 알 수 있는 흥미로운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4장인 내가 여자한테까지 무시당해야 돼?[] 에서는 말 그대로 등 보이기 싫은 한국 남성의 심리가 아침 드라마를 보는 주부들을 혐오하는 남성들로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여성의 흡연을 출산과 연관지어 이기적인 행위라고 경멸하면서도 건강한 정자 걱정은 하지 않는 남성들을 고발한다. 

 

 요컨대 한국남성들을 여성 혐오를 정당화하고 공감 능력이 없는 괴물로 만드는 요인은 사회적으로 결정된다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한국 사회의 특수함을 저자는 적극적으로 고려한다. 그러나 저자가 분명히 하는 것은 그렇다고 해서 한국 남성들이 누리는 특권들이 합리화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는 통렬한 자기반성과 함께 이기적인 남자들을 타이르고 꾸짖는다. ‘차라리 이기적이라고 인정하는 게 이른바 남자다운 것 아니냐면서 말이다. 그리고 약자인 여성을 공격하는 그 화살을 어디에다 돌려야 하는지 은밀하게 암시한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여성들이 현재 당연하게 요구하는 것들이 왜 한국 사회에서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는지, 그 단초를 이해할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된다는 점이며 남성들에게는 자기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사실 특별히 페미니즘의 사상이나 철학을 심도 있게 설파하고 있지는 않다. 열거된 사례와 에세이들 각각이 어떤 필연성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책에서 시종일관 괄호 쳐져 있는 것은 곧 개인적인 일이 사회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과, 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페미니즘에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지금 우리에게는 페미니즘이 필요하다